News Release:
2015 01. 15.
동문칼럼 - 나를 빚쟁이로 만든 감신
나를 빚쟁이로 만든 감신

이광섭목사 (81학번, 전농교회 담임)

감신 입학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은총이었다. 가난했던 내 형편을 생각할 때 감신이 아니었다면 학교를 제대로 마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감신에서 빚을 많이 졌다. 흔히 사랑의 빚이라고 표현하는 그런 빚 말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적어도 잊을 수 없는 빚을 나는 네 번씩이나 졌다.
처음 빚은 81년도 2학기에 졌다. 1학년 1학기 입학금을 간신히 마련하고 한 학기를 마친 나는 2학기가 다가오자 등록금이 없어 쩔쩔맸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 주신 돈으로 급한 대로 등록금 분할 납부를 했다. 날짜가 다가와 나머지를 납부를 해야 하는데도 돈이 없었다. 친구가 그 상황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마치 자기 일처럼 손을 걷어 부치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 손에 등록을 하라며 돈을 쥐어주었다. 그 친구는 학교 옆에 있는 서대문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서대문교회를 출석하고 있는 감신 직원에게서 돈을 빌려왔다고 했다. 돈을 건네주는 그 친구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담담했다. 그건 내 삶을 규정짓는 원초적 경험이었다. 그 후 그는 내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지금도 그 친구는 어렵고 곤란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아마 그 친구는 모를 것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진 사랑의 빚 때문에 나만 챙기려는 내 이기심이 발동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해 왔는지를.
두 번째 빚은 2학년 2학기를 시작하면서 졌다. 역시 등록금이 어려웠다. 당시 종로5가 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부장으로 일하던 선배를 만나게 되었다. 일 때문에 갔는지, 그냥 들렸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눈 후에 일어나려는데 학교 등록을 했느냐고 물었다. 누구에게 들은 걸까, 의아했지만 등록을 못했다고 하자 서랍을 열더니 봉투를 하나 건넸다. 얼마 안 되지만 등록하는데 보태라면서. 표정도, 말씨도 조용하기만 한 그 선배는 열심히 공부하라며 등을 떠다밀어 나를 내 보냈다. 그 선배는 자신이 부장생활하면서 받는 얼마간의 월급과 안정적인 삶에 대해 갖고 있던 부채의식을 후배에게 사랑으로 나누어 준 것이었다.
세 번째 빚은 2학년을 마친 겨울방학 때 졌다. 이 때 진 빚은 통상적 의미의 진짜 빚이다. 2학년을 마치고 나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군대를 가야되겠다. 하지만 군대 가기 전에 시험을 하고 싶었다. ‘내 힘으로 학비를 벌어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 때 군대를 가도 늦지 않으리라’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 때 기숙사 생활을 함께 하던 친구가 당시 유행하던 ‘오방떡’ 장사를 해 보자고 제안을 했다. 장사가 잘 될 것 같았다. 시장 조사를 해 보았다. 하루에 200개만 팔면 두 사람의 한 학기 등록금과 생활비는 일거에 해결될 것 같았다. 장밋빛 꿈에 부풀었다. 문제는 오방떡 장사를 위한 자금이었다. 동기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다. 흔쾌하게 오방떡 장사를 위한 준비자금을 빌려주었다. 당시로서는 학생인 나에게는 거금이었다. 겨우내 열심히 장사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생각과는 한참 달랐다. 한겨울 서울 객지 생활비를 계산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치열하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뜨겁게 맛본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빚은 우리 이모님에게 진 빚이다. 어려운 학부 시절, 이모는 늘 기도는 물론이고 물질적으로도 후원을 해 주셨다. 하지만 내게 이모님은 만만한 존재였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툴툴대거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흔쾌하게 도움을 받아들이지 못하곤 했다. 그런 나를 향해 이모는 “도움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나중에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 그게 사람 사는 도리”라고 강조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새 그 말이 마음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그래 고맙게 받자, 그리고 잘 돕자’ 이렇게 나도 모르게 되뇌게 되었으니 말이다.
감신은 내게 사랑과 선물을 잔뜩 안겨주었다. 생각해보면 감신에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은 내가 빚쟁이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를 빚쟁이로 만든 선배와 동기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통해 주님의 존재를 만져보고 느끼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다. ‘빚진자로 살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고백을 놓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