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Release:
2014. 04. 17.
다원주의와 제국에 대항하는 아스만의 정치신학
나치의 수석 법률학자였던 헌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을 몰락시키고 대독일제국(Greater German Reich) 또는 제3제국(Third Reich)이라고 불리는 나치정권을 수립한 1933년 이전부터 “정치 신학”을 주장하였다. 슈미트는 근대 국가의 근거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 주권을 신학적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국가 주권을 설명하는 “정치 신학”이라는 용어는 1922년 슈미트가 본(Bonn) 대학의 민법 교수로 있을 때에 발표한 저서 『정치 신학』에서 시작되었다. 슈미트는 『정치 신학』에서 “주권이란 예외상황을 결정하는 자”라는 결정주의론 주권론을 주장한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정치사상들 가운데 “예외,” “예외상황,” 또는 “비상사태”라는 개념은 바로 슈미트의 정치 신학에서 나온 개념들이다. 또한 슈미트는 “국가에 대한 근대적 이론에 있어서 모든 중요한 개념들은 신학적 개념들이 세속화”된 것이라는 신학의 세속화를 주장한다. 슈미트에게는 근대 국가론은 신학인 셈이다.
이러한 슈미트의 정치 신학은 신학이라기보다 정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우리가 냉전 시대에 좌파 이데올로기적인 정치 신학을 경험했다면 슈미트를 통해 우파 이데올로기적 정치 신학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현재와 권력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종교를 사용하는 것이다. 우파적 정치 신학은 종교의 수단화를 넘어서 국가가 종교가 되는 국가권력 지상주의이다. 여기에는 필연이 있다. 즉, 종교는 필연적으로 진화하여 국가가 된다. 이러한 슈미트식의 정치와 신학의 관계모형은 이미 기독교 역사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4세기의 어용 신학자요 교회역사학자이며 감독이었던 유세비우스는 로마의 평화는 신의 섭리이고, 제국의 황제는 하나님의 섭리를 치리하는 통치자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평화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실현된 것이라는 내재적 해석을 전개했다. 초월성을 결여한 내재적 해석은 슈미트에 의해서 재현된다. 그는 제3제국의 행태를 하나님 나라의 내재성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슈미트의 정치 신학은 종교가 정치로 발전한다는 발달론적 세속화론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은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가 주장한 인간의 의식과 지식이 신학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단계, 그리고 실증주의적 단계로 필연적으로 발전한다는 이론과 일치한다. 실증주의적 정치가 종교의 종착역이라고 믿고 있는 슈미트와 그의 정치 신학은 시작부터 거센 저항을 받게 된다. 본(Bonn) 대학의 신약과 교회사 교수였던 에릭 피터슨(Erik Peterson)은 슈미트식의 정치 신학에 근원적인 비판을 하였다. 피터슨은 정치 신학 불가론을 주장하였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어떠한 정치 신학은 불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은 우파 또는 좌파적 정치 신학이 갖고 있는 극단적 내재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 될 수 있다.
고대 근동학의 대가인 얀 아스만(Jan Assmann)은 슈미트에는 반대하지만 피터슨의 정치 신학 불가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처럼 정치 신학은 유대-기독교 신학에서는 필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아스만에게 모세의 이집트 탈출은 새로운 정치 신학을 시작한 것이며, 모세에 기초한 유대교는 이집트 제국 정치와 다원주의 신학에 반대하는 반(反)정치이며 동시에 반(反)신학이다. 이렇게 반신학과 반정치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 신학 담론은 슈미트의 정치 신학을 저항할 수 있다고 아스만은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아스만이 주장하는 모세적 유대전통에 근거한 정치 신학은 반(反) 또는 역(逆)정치 신학인 셈이다. 그러기에 유대-기독교 정치 신학은 유세비우스나 슈미트와 같은 정치 신학을 거부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즉 새로운 정치 신학을 밝혀낸다. 출애굽을 통한 모세의 정치 신학은 이집트의 궁정정치 신학 또는 제국 신학을 반대하며 만들어진 반(反)신학이며, 또한 모세의 정치는 이집트의 정치를 반대하면서 만들어진 반(反)정치이다. 그러기에 유대교의 종교 행위인 제사 현장은 주변 제국들이 신으로 섬기고 있는 동물들은 각을 떠서 죽이며 불태우는 반신학과 반정치의 실습장이 되었다.
아스만에게 있어서 반정치 신학은 정치의 신학화이다. 이것은 슈미트의 신학의 세속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정치가 신학에 의해 비판되어지면서 신학에 의한 새로운 정치가 열린다는 주장이다. 정치는 신앙적으로 변혁됨으로써 새로운 정치로 출생된다. 반신학을 통한 새로운 신학은 제국과 다원주의의 정치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진정한 혁명은 신학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 슈미트에게 신학이 세속화의 진행에서 하위적 개념이면서 넘어서야 되는 것이라면, 아스만에게 있어서는 세속화가 신학에 비해 하위적 개념이며 극복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아스만의 반(反)세속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신학이며, 그 신학의 핵심은 모세의 유일신론이다. 모세의 출애굽사건은 바로 야훼 유일신에 대한 신앙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이 신앙은 바로 당시의 이집트의 정치를 반대하면서 새로운 정치적 혁명을 이룩한다. 당시의 세계관이며, 시대정신이며, 문화이며, 또한 규범이었던 다신교적 신앙을 대항하고 반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모세의 유일신 신앙은 다원주의적 이방주의에 근거한 이집트 정치를 혁명적으로 반대하는 신학적 정치를 만들어낸다.
야훼 유일신론에서 중요한 축은 계약(covenant)신앙이다. 유대교는 이 계약신앙을 통해서 당시의 세계의 지배적인 정치 형태를 거부한다.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 중동과 지중해 연안의 제국들의 정치 형태에서 정의(justice)와 계약은 인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의와 계약은 오직 인간들의 삶을 연결해주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야훼 유일신 신앙에서는 이러한 인간 중심적 한계를 넘어서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와 계약의 개념을 반대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다. 정의와 계약은 근원적으로 신과 인간 사이에서 맺어지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 계약신앙이다. 이러한 신과의 우선적 관계에 근거하여서만 인간 사이에서의 계약이 성립될 수 있다. 인간들끼리의 계약에서 형식적으로 신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과의 계약을 근거로 하여 인간 사이의 계약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과 인간의 계약은 인간들의 계약에 비교할 때에 보다 근원적인 헌법이 된다. 하위법이 상위법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인간들의 계약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들 사이에 정의의 규범이 된다. 따라서 이러한 야훼 유일신 신앙은 현실 정치를 극복할 수 있다. 현실적인 인간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계약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규범성을 가질 수 없다. 인간들이 계약을 맺어도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기는 계약이 된다면 이는 무효가 된다.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기는 인간의 계약은 모두 불의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정의와 계약은 현실 정치에서 만들어지는 정의와 계약을 평가하고 비평하고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 야훼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계약이 인간의 계약을 넘어서고, 하나님의 정의가 인간의 정의를 넘어서며, 하나님의 정치가 인간의 정치를 넘어서는 것이다.
아스만이 주장하는 신학화는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를 추구한다. 인간들의 것은 더 이상 인간들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거래와 소통을 통제하는 규범들이 더 이상 인간에 의해서만 정당화되지 않는다. 이 아스만의 신학화는 탈(脫)인본주의이다. 인간은 인간에 의해서만 인간이 될 수 없다. 거칠게 말해서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정의(定義)내리는 인간상에 참여하여야 한다. 탈인간적 참여, 탈현실적 참여, 탈-내재적 참여가 인간과 현실과 내재를 혼란스럽게 한다. 인간은 신에 의해서만 완성되며, 인간의 정의와 법도 신의 정의와 법에 의해서만 완성될 수 있다. 즉, 하나님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아스만의 주장들은 칼 슈미트의 주장을 반대한다. 슈미트의 세속화론에서는 정치는 종교의 완성이며, 종교는 세속에 의해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아스만은 이것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슈미트의 내재화 개념까지도 아스만은 뒤집어 놓는다. 내재화는 초월에 의해서 늘 탈내재화 된다.
아스만의 정치 신학에서는 신학이 정치의 하수인이 아니라 정치가 신학의 하수인이 된다. 정치를 위해 신학이 이용되기보다는, 신학이 정치를 개혁시킨다. 마치 리차드 니버의 문화와 그리스도의 유형론으로 본다면 아스만이 보는 모세의 차별성은 문화를 대항하는 그리스도 유형에 가깝다. 그러나 차별성을 통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기에 문화를 개혁하는 그리스도 유형과도 일치한다. 모세의 유일신론은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는 혁명이다. 혁명은 구체제를 전복시키고 신체제를 세운다. 이제까지의 정치적 체제를 폐기하고 새로운 정치적 체제를 세움으로써 정치에 근본적인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아렌트적으로 표현하자면 혁명은 새로운 탄생(natality)이며 건국(constitution)이다. 모든 탄생이 산고의 고통을 동반하듯이 혁명도 고통을 동반한다. 변하지 않으려 애쓰는 수구 세력과 변화를 이룩하려는 혁신 세력의 투쟁은 피를 동반할 때가 많다. 하지만 유일신 신앙에 기초 둔 유대-기독교 혁명은 좀 더 다른 식의 혁명이다. 유대는 출애굽의 혁명이고 기독교는 십자가의 혁명이다. 모세는 자신이 속했던 체제를 변혁시키지 않고 출애굽 한다. 예수는 로마를 전복하지 않고 십자가를 택한다. 그리스도인들도 체제 전복을 위해 투쟁하기보다 순교를 선택한다. 다원주의와 투쟁하지 않고 그 다원주의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유일신 신앙의 혁명은 밖으로 나가는 혁명이다. 스스로는 기존, 다수, 현실, 전통, 카리스마로부터 독립하는 혁명이다.
아스만에게 있어서 모세의 유일신 신학은 종교가 정치를 정당화시켜주는 궁정신학을 거부하는 것이다. 노예를 통해서 유지되는 제국의 정치를 거부하는 것이 야훼에 대한 유일신 신앙이다. 다신론과 다원주의는 이집트 제국의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근거이다. 모세의 유일신 신학은 다신론과 다원주의를 거부함으로써 제국의 “정치적인 것”을 거부하였다고 아스만은 이해하였다. 야훼신앙은 거부이며 반대인 동시에 또한 해체이다. 이 야훼신앙은 이집트의 현실 정치를 거부하고, 반대하며, 또한 해체시킨다. 이러한 거부를 통해서 모세적 차별이 이루어지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었다. 당시의 종교는 정치의 하수인이었다. 현존하는 정치는 늘 다신 종교에 의해서 확인되고 유지되었다.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열방의 신들을 모두 하나로 연결시키고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열방의 신들은 지역 마다 이름은 다를지라도 서로 번역 가능하였다. 그러나 야훼는 그 어떤 이방 신들과도 번역 불가능하였다. 이러한 신의 번역 불가능성은 당시의 다신주의 세계에서는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모세의 차별로 이루어진 번역 불가능한 야훼를 믿는 신앙인들은 스스로 광야로 나가게 된다. 다수주의, 다원주의, 다신론의 횡포에 반대하여 타자로 독립하는 것이 모세의 혁명이며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된다.
출애굽 사건에서 이러한 스스로 물러남, 스스로 빠져나옴, 스스로 고립 당함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소위 자발적 “왕따”는 지배 문화와 정치에 의해서 언제든지 박해를 당할 수 있게 된다. 기독교의 순교는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함으로 만들어진다. 초대 교회에서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유일하신 야훼만을 고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결단은 순교로 이어졌다. 순교를 통한 변혁은 그리스도인들의 세계 변혁의 도구가 된다. 이점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다른 점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은 유일신 신앙을 강요한다. 그들의 알라 신앙을 현실 정치에서 성취하여야 한다. 그 성취의 방법은 순교가 아닌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이슬람의 국경은 늘 피로 물들게 된다.
유일신 신앙에 기초를 둔 모세적 차별(Mosaic distinction)을 배타주의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일신 신앙에서의 배타주의는 남을 배척하면서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쫓는 배타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분명한 것은 모세적 차별에서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식의 생각 없는(thinkless) 다원주의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다신론을 거부하고 야훼 하나님만을 추구하는 유일신론적인 신앙을 지향하는 것이 배타적인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인 비난일 수 있다. 아스만이 주장하는 유대-기독교의 유일신론적 신앙은 스스로를 타자로 구별하는 것이다. 모든 정체성은 선을 긋는 것이고 선을 긋는 과정에 안과 밖이, 위와 아래의 구별이 생긴다. 자아 정체성은 비구별적 혼돈에서 세계와 나를 구별하는 것이고, 나와 다른 자아들을 구별하기 시작하면서도 타인과 나를 구별하면서 형성된다. 유대-기독교의 유일신 신앙은 마치 자발적 청빈 개념과 같다. 유일신 신앙은 자발적으로 시대정신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다원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며, 자발적으로 다신론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유대-기독교는 다원주의와 다신론의 전체주의적 테러에서 출애굽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었다. 정치는 신앙화된다. 이것이 정치의 신학화이다. 평화와 정의로운 정치는 정치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신앙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 정의롭고 평화스러운 정치가 행해져도 이것은 완전한 정의와 평화는 아니다. 실낙원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늘 부족하고 늘 불완전하다. 그러기에 완전한 내재는 없다. 이러한 초월성은 오직 야훼 신앙을 통해서만 현실을 비판하고 개혁하고 또 겸허해질 수 있다. 이것이 유대-기독교의 야훼 신앙이고 혁명이 된다.
후쿠야마가 냉전 이후를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일방적 승리로 간주하고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였으며 대처 수상은 시장 경제 체제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통합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제국의 정치는 더 이상의 초월이 불가능한 것처럼 간주되었다. 바늘 하나 들어갈 자리 없이 탄탄한 체제를 이루고 있는 자유주의적 경제-정치 체제를 흔들어 전복의 틈새를 만들기 위해서는 슈미트 식의 우파적 정치 신학과 냉전 시대의 좌파적 정치 신학을 극복하고 신앙에 의한 새로운 정치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내재주의와 이데올로기를 극복하고 신앙에 의한 새로운 출애굽이 새로운 정치 신학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출애굽은 모세의 구별처럼 반제국적이며 반다원주의적인 모습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새로운 출애굽은 현재를 반현재화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신학이 될 수 있다. 야훼 신앙을 기초한 탈현재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현재를 제공하여주며 이러한 새로운 현재는 암담한 지금의 현실을 초월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새로운 정치 신학은 우리들을 진정한 해방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